한 달에 일주일, 나는 세상에 신께서 존재하신다면 그 분은 필시 남성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울컥울컥 새어나오는 피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여기저기 치이다보면 그 확신은 이내 대상 없는 원망으로 변한다.
나는 그 일주일동안 호르몬의 압도적인 힘에 무기력하게 묶여 이리저리 휘둘린다.
그 정도가 심하든 심하지 않든 세상의 반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겪을 것이다. 그렇다, 생리다. 도무지 좋아하려 해도 좋아할 수 없는.
생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란할진대 들려오는 뉴스들은 나를 더 힘 빠지게 만든다. 생리대의 가격은 오르고, 그 와중에 발암물질은 검출되고,
그 와중에 누군가는 생리대 살 돈도 없어 깔창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쓴다고 했다. 생필품으로써 면세 혜택을 받는 생리대 가격은 왜 자꾸 오르는
것이며 가장 민감한 부분에 닿는 물건을 왜 그런 물질로 만드는 것이며 왜 그런 기초적인 부분이 고려되지 못해 누군가는 깔창으로 생리대를 만들어 쓰는 것일까.
그런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을 이해할 새도 없이 나는 대학을 왔고 자취를 하게 되었고 나 혼자 생리대를 사게 되었다.
엄마가 사준 생리대를 쓸 때는 몰랐다. 하지만 자취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기어이 집에서 가져온 생리대가 다 떨어졌다.
나는 호기롭게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서도 어딘지 모르게 막막한 기분에 선뜻 하나를 사지 못하고 애꿎은 마우스만 달칵거렸다.
그런 나를 보던 친구도 나와 함께 머리를 맞대며 이것저것 말을 얹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몇 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런 거 꼼꼼하게 잘 따지는 동생이 추천했다며 29days라는 생리대 회사를 소개해주었다.
어차피 이렇게는 답도 안 나올 것 같고. 나는 기껍게 그 추천을 받아들였다. 내가 제대로 알게 된 첫 소셜벤처였다. 이는 또한 내가 소셜벤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동안 내 안에 소셜벤처의 이미지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사야하는, 있으면 사회에 좋겠지만 사실 기부나 다를 바 없는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당연히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29days 홈페이지를 찬찬히 읽으며 나는 소셜벤처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사회적 이슈에 불만을 가지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행동하는 것. 거기에 더해 다른 사람들도 행동할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는 것.
소셜벤처는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사회 운동 아닐까? 내가 생활에서 느끼는 사회 문제에 대하여 누군가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나도 그 노력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았다.
내가 생리대를 주문하면 취약 계층의 누군가에게도 생리대가 간다는 문구는 누구라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이고 효과적이었다.
학교에서 화장실을 쓰다가 못 보던 생리대 비치함을 발견한 적이 있다. 예전에는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던 사실도 누군가 공론의 장에 내놓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 사회를 바꾼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분 좋게 화장실을 나섰었다. 생리대를 사려고 29days 홈페이지를 읽고서야 나는 그 비치함도 29days와 비영리단체 십시일밥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사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나는 십시일밥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소셜벤처는 내가 알든 모르든 천천히 세상을 바꾸어 나가고 있었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사람들과의 협동은 더 나은 사회를 제시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리를 안 할 수는 없다. 그런 것처럼 세상에 있는 많은 부조리들도 사실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우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계획하고, 노력한다. 여전히 생리는 짜증나겠지만 그런 노력 속에서 불필요한 걱정, 불쾌한 경험들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사회에서 소셜벤처가 그런 노력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